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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oul Report

잠재의식과 충동

by STELLA 888 2022. 1. 7.

Photo by Pawel Czerwinski on Unsplash

 

 

만약 단 한 가지 소원만을 빌 수 있다면 아마 나는 '세상을 알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을 것이다. 사람이 궁금했고, 인생이 궁금했고, 세계의 원리가 우주의 원리가 궁금했다. 불안과 두려움은 무지로 생겨나고 앎의 느낌은 시야를 환히 밝혀주고  차분하고 명료한 상태로 접어들게 했다. 무언가를 진정 알기 위해서는 지식과 이론으로 단순히 누군가에게 배울 수 없고 체감하고 체험해야 한다. 그래서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구분이 되냐'는 그 핀잔에는 난 먹어보기 전까지 먹어보고 싶은 그 유혹을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진정 알고 싶다면 먹어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는 사는 내 진정 알기 어려웠다. 죽음까지 겪은 온 과정을 다 체험해야 '삶'이 무엇인지 체감할 수 있을 텐데. 개별적인 인간에게 삶은 딱 그 시점까지의 삶의 앎으로 추론한 것에 불과하다. 살아보면서 아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 걸 보면(그냥 사는 게 안 된다는 거 보면) 그 궁금증까지 품고 나름대로의 탐구를 함께 하며 사는 게 내가 겪고 싶은 생의 모습이 아닐까. 궁금하다는 것 자체가 알고 싶다는 것 자체가 그저 그냥 사는 건 나로 사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여러 번 삶에 대한 시각과 해석이 달라진다. 20대 초반까지는 회의적인 시선으로 허무주의까지 내려간 이후 그럼에도 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삶은 아무 의미도 없고 살아갈 필요도 당위도 없지만 좀 부당하게 느껴지더라도 일단 태어나고 나서는 생명을 지속할 책임이 각자에게 있었다. 사회적 규칙이나 의무가 아닌 한 개별 존재로서의 당위감 같은 거다. 달라고 애원한 적 없지만 받아들였으면 끝까지 가보는 거. 거기다가 그저 살기에 무료하고 허무해지는 게 인간이니 그럴 필요도 없지만 원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게 삶이라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선택하는 삶, 그 선택을 엮어 자신만의 의미를 만드는 게 그게 삶. 

 

선택이 어려운 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택을 한다는 건 하나 이상의 다른 선택지를 포기할 뿐더러 다른 미지의 가능성을 IF의 세계에 구겨 넣은 채 미완으로 남긴 채 단 하나의 선택으로 펼쳐지는 삶을 현실 감각을 탑재하고 체감하게 된다. 이전까지 그 선택을 하는 건 개인의 자유 의지라고 믿었고, 그 개인의 자유의지가 개성이자 자아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부분 중 하나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눈으로 보이지 않고 의식할 수 없는 세계의 흐름이나 법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가 할 마음이 내킬 때의 그 억제되지 않은 '충동감'은 날 선택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들고 다른 세계를 살아가게 만든다. 그건 예전처럼 그저 한 사람의 개성이나 감정적인 영역에서 온전히 결정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자신에겐 자연스럽고 자신의 결정이기 때문에 온전한 나의 자유 의지처럼 느껴진다.- 사후적으로 그 일을 선택하게 만든 그 충동에 대해 이유나 논리를 붙일 수는 있지만, 그게 진짜 이유가 아니라 그럴듯한 의미 부여에 해당할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행동을 만드는 강력한 에너지의 원천인 그 충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건 독립적이고 주체성을 지닌 주인이라기보다는 창조하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잠재의식(드러나지 않는)이다. 잠재의식 속 자신에 대한 관념과 세계를 보는 방식을 그대로 현실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충동성을 작동한다. 그래서 갑자기 강한 충동을 일어날 때 나는 이 일의 진정한 목적도 이 일의 결과도 알 수 없다. 오히려 헛다리 짚을 때가 많다. 아주 오랜 시간 어쩌면 그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일이 진행된 흐름을 되짚어보면 놀라울 때가 많다. 이것을 세상은 우연이라고 치부하겠지만 말이다. 

세상에 잠재의식을 지닌 존재는 나 하나만이 아니기 때문에 강력한 의지가 결합한 타인의 잠재의식 속 세계를 이루어주기 위해 나 역시 때로는 역할극에 참여한 조연과 엑스트라가 되기도 하다. 그 모든 선택과 결정은 결코 나만을 위해서 내려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굳이 타인이나 상황을 원망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그저 시나리오에 맞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거 뿐이다. 물론 그들도 모르게)

 

 

삶을 알기 위해서는 살고 체험해야 하고 종국에 변화를 이끌어 내는 건 행동의 변화라는 선택에 있지만 그 선택을 만들게 불을 지피는 건 하고자 하는 '의지'와 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이다. 그 의지와 충동이 의식할 수도 조정할 수도 없는 잠재의식의 자동적인 복사 붙여놓기에 불과하다면 사실상 나란 존재는 그저 허상 속 꼭두각시나 다름이 없다. 내 삶을 사는 건 나라기보다는 어둠의 뒤편 거대하게 감춰진 마구잡이로 섞인 비밀스럽고 복잡한 정보체계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자유의지는 허상이란 말인가? 세상에 우연은 없고 필연적으로 내 삶은 고정되어 있다는 말인가?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 같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럼에도 나름 잘 살아가고 불만도 없고 이런 질문도 안 한다면 그만큼 좋은 인생이 있을까 싶다.) 지금처럼 흐르는 대로 산다면, 이미 내가 가진 잠재 의식은 나이가 지나 자연스럽게 추가되는 외부의 정보들을 지금껏 조합해온 방식처럼 추가로 덮어 쓰이는 거 이외에 큰 변화 없이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잠재의식 속 그려진 세계의 그림을 바꿀 수 있다면, 나의 현실은 그에 맞춰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잠재의식이 현실로 투영되는 과정에서 우연이랄 것은 전혀 없이 완전한 반영을 하겠지만, 잠재의식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은 모든 게 정해져 있지 않고 당신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물론, 잠재의식을 파악하는 것도 변화를 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위대한 건 인간 안에 신이 있는 이유는 한 명도 빠짐 없이 인간이라면 응당 잠재의식을 파악하고 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건 돈을 들여서 타인에게 배워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격을 얻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다른 능력치처럼 누군가만 특별히 잘할 수 있는 배타적인 성격을 지니지도 않았다. 다만, 절실히 그것을 구하는 자, 그게 필요한 자가 잊어버린 그 능력을 일깨우기 위해 부단히 삶에서 시도하고 또 시도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조금은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경험이 격려와 도움을 주겠지만, 아무리 위대한 타인도 그 작업을 해줄 수는 없다.

 

사람들은 세상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흔히들 말한다. 나도 그 말을 참 많이도 사용해왔다. 그러나 그건 그저 보이는 물리적인 현실 세상의 이야기이다. 물리적인 세상을 의식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저주의 바람이 몰아친다. 그러나 놀랍게도 딱 나만이 오로지 나만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만 들어갈 수 있고 나만 체험할 수 있는 놀라운 세계가 각자에게 있다. 인간의 내면세계이다. 감각과 감정, 생각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의식적으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마치 그것은 나를 대변하는 것만 같다. 감각은 외부에서 오고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해석해서 감정을 만든다. 생각은 언어를 배운 후 내가 가진 잠재의식의 안테나에 따라 또 감각과 감정에 따라 이리저리 내게 날아든다. 마치 내가 만든 것처럼. 그러나 생각은 내가 만들었다기보다는 떠다니는 수많은 생각 중 내가 지닌 안테나와 일치하는 신호를 받아 드는 것뿐이다. 물론 이들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단 하나가 원인으로 결과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들은 주인도 아니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주인이라기보다는 창조하는 삶을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도구라서 열등하거나 등한시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도구이기 때문에 이들은 종속적이지 절대로 개별적으로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주인은 내가 만들었는지도 모르지만 분명 내가 만든 잠재의식이란 녀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재의식은 순수해서 이게 내게 좋은지 나쁜지, 유용한지 아닌지 같은 판단을 하지 않고 그대로 믿어버린다. 그러니 잠재의식을 변화하지 않은 채 단순히 감정만을 억제하거나 생각을 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도 잠재의식을 거스를 수 있는 그런 초인적인 의지는 없다. 

 

잠재의식의 법칙을 이해하고 실제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 그래서 내가 원하는 잠재의식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 이것이 요즘 나의 목표이자 실험 과제이다. 이 법칙을 실제로 원하는 만큼 스스로 증명하고 확인하여 더이상 의문이 생기지 않을 때, 인간의 삶과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한 핵심적인 진리를 알게 된 충만함에 기쁨이 흘러넘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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